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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5. 4.

    by. jin-75

    목차

      베르그송 철학의 핵심: '지속' 개념의 의미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은 20세기 초 프랑스 철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인간 경험 속 시간의 본질에 대한 독창적 통찰을 제시한 철학자이다. 그는 전통 형이상학이 공간화된 시간, 즉 시계 시간(clock time)이라는 개념에 갇혀 있다고 비판하며, 인간의 내면적 시간 경험을 ‘지속(durée)’이라는 개념으로 재정의하였다. 이 지속은 양적이고 균일한 시간 개념이 아닌, 질적이고 유동적인 시간성을 의미하며, 삶과 의식의 흐름 그 자체를 지칭한다.

      베르그송에게 있어서 지속은 수학적으로 분할되거나 정지될 수 없는 흐름이다. 그것은 현재, 과거, 미래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유기적인 흐름으로 결합된 상태이다. 이러한 지속은 주체의 내면 속에서 경험되며, 삶과 죽음의 문제 또한 이 지속적 흐름 속에서 새롭게 해석된다. 그는 인간 존재가 단지 생물학적 유기체가 아니라 의식의 연속성과 창조적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임을 강조하며, 이로써 죽음을 단지 생명 정지의 순간이 아닌, 지속의 변형으로 바라보게 한다.

      '지속'의 관점에서 본 죽음의 시간성

      베르그송의 철학에서 죽음은 단지 생물학적 종결이 아닌, 시간성과 존재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 사유의 대상이다. 그에게 죽음은 생명의 정지라기보다는 의식의 지속이 다른 차원으로 전이되는 사건에 가깝다. 이러한 관점은 전통적인 시간 개념 속에서의 '죽음 = 끝'이라는 등식에 도전하며, 죽음을 ‘끊기는 순간’이 아닌 지속의 비가시적 전환으로 해석하게 만든다.

      이는 베르그송이 말하는 '순수 지속(pure durée)'의 성질 때문이다. 지속은 어느 한순간으로 정지되거나 객관화될 수 없으며, 전체로서 경험되는 시간이다. 그렇기에 죽음은 우리 삶 속에서 시간의 중단이 아닌, 지속의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 특히 인간이 죽음을 인식하는 방식은 외부에서 관찰된 물리적 죽음이 아니라, 의식 안에서 점차 침식되어 가는 지속의 변화로 이해된다. 즉 죽음은 고정된 ‘사건’이 아니라, 느리게 진행되는 내부 시간의 굴곡이다.

      이러한 사유는 현대 심리학 및 임종 경험 연구와도 접점을 갖는다. 예컨대 말기 환자들이 죽음 직전의 시간에 대해 말할 때, 시계로 측정되는 시간보다 훨씬 풍부하고 복합적인 내면의 흐름을 이야기한다. 베르그송은 이런 경험을 이미 철학적으로 예견하고 있었으며, 죽음을 ‘끝’이 아니라 ‘지속의 심화’로 이해하는 관점을 제공한다.

      창조적 진화 속 죽음의 위치

      베르그송은 『창조적 진화(L'Évolution créatrice)』에서 진화의 본질은 기계적 적응이 아닌 ‘엘랑 비탈(élan vital)’, 즉 생명의 비약과 창조적 추진력에 있다고 보았다. 이 힘은 생명을 단순한 유기체의 생존과 번식을 넘어선 의식적 진화의 흐름으로 이끈다. 그렇다면 죽음은 이 창조적 흐름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

      그는 죽음을 엘랑 비탈의 반대 개념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죽음은 생명의 방향성을 더욱 심화시키는 의식 진화의 한 국면으로 간주된다. 죽음을 통해 생명은 더 이상 생존 중심의 형식에 머무르지 않고, 의미와 형식의 창조로 이행하는 계기를 맞이한다. 이는 단지 생물학적 소멸이 아니라, 영혼 혹은 의식이 지속과 창조적 시간 속에서 다른 차원으로 나아가는 이행으로 볼 수 있게 만든다.

      따라서 베르그송에게 있어 죽음은 삶의 종결이라기보다는 창조적 진화의 전개 속에 포함된 내적 리듬의 일부이다. 이는 생명과 죽음을 동일 선상에서 시간의 질적 변화로 사유하게 하며, 우리로 하여금 죽음 이후의 가능성에 대한 폐쇄적 관점을 벗어날 수 있는 철학적 유연성을 제공한다.

      베르그송의 지속 개념과 죽음의 시간성

      의식과 기억, 그리고 죽음 이후의 지속

      베르그송은 인간 의식을 ‘지속’ 그 자체로 이해하였다. 이는 기억과 의식이 단지 두뇌의 생물학적 기능이 아니라, 삶 전체를 관통하는 정신적 흐름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그의 기억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특정한 기억을 떠올릴 때 그것을 단지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전체가 현재 속에 중첩된 채로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처럼 베르그송은 기억을 하나의 ‘기억-지속’으로 보며, 이는 곧 죽음 이후의 의식 상태를 사유할 수 있는 철학적 단서를 제공한다.

      죽음 이후, 뇌가 정지된다 하더라도 지속은 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육체적 기제에 귀속되지 않는 흐름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베르그송은 명시적으로 사후 세계를 주장하진 않았지만, 그의 지속 개념은 우리가 죽음을 단절로 보는 데에 철학적 제동을 건다. 죽음을 겪는 자의 내면에서는 의식의 ‘시간’이 어떻게 느려지고, 흐르고, 변화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베르그송은 죽음을 지속의 또 다른 장으로 여길 수 있는 철학적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이는 단지 형이상학적인 위안이 아니라, 우리가 죽음을 사유할 때 경험하는 시간의 속성 자체를 되묻게 한다. 마지막 순간이 단지 '정지'가 아니라, 가장 밀도 높은 시간의 응축이라면, 죽음은 오히려 삶을 완성시키는 최고의 질적 시간이 될 수 있다.

      베르그송의 죽음론이 현대 사회에 주는 통찰

      오늘날 우리는 죽음을 객관화된 사건으로만 다루려 한다. 의학적 사망 판정, 장례 절차, 유산 정리 등은 모두 죽음을 외부적 관리 대상으로 만들지만, 이러한 사회적 방식은 죽음을 ‘살아 있는 시간’으로 경험하는 내면적 차원을 철저히 외면한다. 이와 같은 시계 시간 중심적 접근은 개인의 고유한 죽음 경험을 표준화하고 말소시킨다.

      베르그송의 철학은 이러한 현대적 조류에 급진적인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는 죽음을 ‘질적인 시간’ 속에서 경험되는 사건으로 이해하며, 각자의 의식 속에서 고유하게 드러나는 죽음의 ‘형태’를 존중할 것을 제안한다. 또한, 생명과 죽음을 양분하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지속과 의식의 연속선상에서 죽음을 이해하는 시각은 정신의학, 임종 심리학, 영성 연구 등 다양한 현대 담론과도 연결될 수 있다.

      죽음에 대한 베르그송의 철학은 ‘삶의 반대’가 아닌 ‘삶의 또 다른 장’으로서의 죽음을 다시 사유하게 만들며, 이를 통해 우리는 삶을 더 충만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죽음은 지속의 끝이 아니라, 질적 전이이다

      베르그송의 '지속' 개념을 통해 바라본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내적 시간의 심화이자 전환이다. 죽음은 생물학적 종말일 수는 있지만, 존재론적 단절은 아니다. 오히려 죽음은 개인의 삶 전체가 농축되어 펼쳐지는 궁극의 질적 시간, 지속의 최고 형태로 이해될 수 있다.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이미 시간 속에 있고, 그 시간은 너의 의식과 함께 계속 흐를 것이다." 이 철학은 죽음에 대한 단순한 위안을 넘어, 삶을 지속적으로 창조하고 갱신하는 시간의 존재로서 인간을 다시 보게 만든다. 베르그송의 사유는 우리로 하여금 죽음을 두려움이 아닌 이해의 대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