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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보듬는 첫걸음
가정은 아동에게 가장 기본적인 정서적 안전지대다. 그러나 이 안전지대가 폭력의 장소가 될 때, 아동은 심리적 충격을 깊게 내면화하고, 장기적인 정서 불안과 관계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가정폭력을 경험한 아동은 단순한 공포나 불안을 넘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세상에 대한 불신을 형성할 가능성이 크다.
가정폭력은 눈에 보이는 신체적 상처보다 훨씬 더 깊은 심리적 상처를 남긴다. 아동은 성인이 되어서도 대인관계, 감정조절, 자기 통제 능력 등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심한 경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이어지기도 한다. 본 글에서는 가정폭력 피해 아동의 정서 문제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이들이 건강하게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정서 지원 전략을 제시한다.
가정폭력이 아동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
가정폭력은 부모 간의 폭력, 부모의 아동에 대한 폭력, 또는 형제간의 반복적인 공격 행동까지 포함된다. 아동은 이러한 폭력을 직접 겪거나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심각한 심리적 외상(psychological trauma)을 경험하게 된다. 이때 아동은 감정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채 ‘내가 잘못했기 때문이야’라는 자책을 하게 되고, 이는 자존감 하락으로 이어진다.
또한 가정폭력을 반복적으로 경험한 아동은 만성적인 불안 상태에 놓이게 된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과민반응을 보이거나, 늘 주변을 살피며 긴장된 태도를 유지하고, 불면증, 두통, 위장장애 등의 신체화 증상(somatic symptoms)이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이러한 증상이 학령기 이후에도 계속될 경우, 학습 집중력 저하, 대인관계 회피, 감정 폭발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상태를 ‘복합 외상(complex trauma)’으로 보며, 즉각적인 개입과 장기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외부에서는 평범해 보일 수 있지만, 아동은 내면 깊숙이 상처를 간직하고 있으며, 이는 성격 형성과 정체성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정서적 안전감을 회복하는 애착 회복의 중요성
가정폭력을 경험한 아동은 신뢰할 수 있는 대상에게 애착을 형성하기 어렵다. 부모라는 보호자가 위협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아동은 세상 전체를 불안하고 위험한 공간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로 인해 대인관계에서 회피형 애착(avoidant attachment)이나 불안정 애착(insecure attachment)을 보이며, 가까운 관계 형성에 두려움을 갖는다.
정서적 회복의 핵심은 이러한 아동에게 ‘다시 안전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교사, 상담사, 보호기관 담당자와의 신뢰 관계를 통해 가능하다. 매일 아침 인사를 나누고, 규칙적으로 대화를 이어가며, 예측 가능한 피드백을 주는 것만으로도 아동은 서서히 정서적 안정감을 회복할 수 있다.
또한, 감정 코칭은 이러한 아동에게 매우 효과적인 접근법이다. 아동이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도록 돕고, "그럴 수 있어", "화가 났구나",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와 같은 수용적인 언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아동은 점차 내면의 감정을 이해하고 조절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놀이 치료와 예술 활동을 통한 비언어적 정서 치유
가정폭력으로 인해 정서적 상처를 입은 아동은 언어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이때는 말이 아닌 놀이(play)나 미술(art), 음악(music) 등 비언어적 수단을 활용한 심리치료가 매우 효과적이다. 특히 5~10세 사이의 아동은 놀이를 통해 감정을 해소하고 외부 자극에 대한 방어 기제를 해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모래놀이 치료에서는 아동이 자신의 세계를 작은 피겨와 공간 안에 재현하며, 무의식적인 감정과 기억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상담자는 아동의 심리 상태를 읽어내고, 필요한 개입을 시도할 수 있다. 또한, 자기표현 활동을 통해 아동은 "나는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어", "이건 내가 겪은 일이야"라고 말할 수 있게 되며, 이는 자아 인식과 자기 존중감 향상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활동은 단순한 놀이를 넘어서 심리적 탄압 효과(decompression)를 가지며, 억눌린 감정을 표출하고 새로운 대안을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집단 놀이 치료는 또래 간의 공감 경험을 제공하며,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
사회적 지지체계 구축과 부모 교육의 병행
정서적 회복은 개인 치료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사회 전체의 지지 시스템이 함께 작동해야 아동은 비로소 안전한 회복 환경에서 자라날 수 있다. 학교에서는 교직원이 아동의 심리적 상태에 관심을 갖고 조기에 문제를 감지할 수 있는 훈련을 받아야 하며, 상담교사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한다.
또한, 지역사회 내 아동보호전문기관, 가정폭력상담소, 심리상담센터 등과의 연계가 원활해야 한다. 단발적인 개입보다 정기적이고 장기적인 심리치료 및 정서 모니터링이 병행되어야 한다. 정부 차원의 심리 치료 바우처 지원, 지역별 트라우마 센터 확대 등 실질적 지원 정책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 교육이다. 가정폭력을 경험한 아동은 가해자인 부모와의 관계 회복 문제를 떠안을 수밖에 없다. 이때 부모가 자신의 행동이 아동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성찰하고, 변화하려는 태도를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감정 조절, 올바른 양육 태도, 공감 훈련 등을 포함한 부모 교육 프로그램은 아동의 회복 가능성을 더욱 높여준다.
가정폭력 아동을 위한 심리적 회복의 여정
가정폭력은 아동에게 치명적인 심리적 상처를 남기지만, 그 상처는 결코 영원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그 아이의 고통을 알아주고, 함께 걸어주는 것이다. 심리학적으로도 아동의 회복탄력성은 놀라울 정도로 강하기 때문에, 정서적 지지와 안전한 관계만 확보된다면 아동은 자신을 다시 회복하고,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
이제 우리 사회는 단순히 폭력을 막는 데 그치지 않고, 폭력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아이들을 회복과 희망의 길로 이끌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심리 상담, 놀이 치료, 학교 기반 개입, 부모 교육, 지역사회 협력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아동은 진정한 ‘안전’을 경험할 수 있다.
가정폭력 경험 아동의 정서 지원은 단순한 복지가 아닌,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바꾸는 치유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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